서울대 홍콩 파이낸스 프로그램에 참가한 이여명(왼쪽부터), 김경한, 이민지, 남연수씨가 서울대 경영대학에서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
한 중년의 어머니가 빨간 립스틱을 바르며 멋을 내고 있다.
경쾌한 음악 소리와 함께 등장하는 굵직한 목소리."어머니의 인생은 깁니다.
이제 좀 살만해졌고,얼마 전 며느리도 보셨고,요즘 조금씩 멋을 부리기 시작하셨습니다.
긴 인생 아름답도록.브라보 유어 라이프(Bravo Your Life)." 삼성생명 광고의 한 장면이다.
서울대 경영학과 4학년 이여명씨(22)는 홍콩의 ING그룹 아시아태평양 지역 본사 직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이 광고 속에 외국계 생명보험 회사인 ING그룹의 한국 진출 전략이 담겨있다고 발표했다.
"삼성생명의 한국 시장 점유율은 60%입니다.
반면 ING그룹 한국지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이에 10분의 1에 불과한 6%입니다.
이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유창한 영어로 질문을 던진 그는 묵묵부답인 홍콩 현지 직원들에게 명확한 해답을 제시했다.
"바로 컬처(문화) 마케팅입니다.
광고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은 '정'이 통하는 사회죠.한국 문화를 이해해야 보다 효율적인 마케팅 전략을 펼칠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 문화를 경시한 채 글로벌 스탠더드만 고집한다면 한국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명쾌한 논리로 홍콩 ING그룹 직원들을 매료시킨 그는 서울대 '홍콩 파이낸스 프로그램'에 참여한 10명 중 한 명.
서울대는 국내 대학으론 처음으로 해외 기업에 학생들을 파견,취업 기회를 뚫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이 프로그램에 따라 학교 전체 지원자 중 7 대 1의 경쟁을 뚫고 선발된 10명의 학생들은 두 달간의 준비 기간을 거친 뒤 지난 8월20일부터 6박7일 동안 ING그룹 모건스탠리 소시에테제네랄 HSBC 등 세계 최고의 금융 기업을 방문하는 기회를 얻었다.
박순애 경력개발센터 소장(행정대학원 교수)은 "처음엔 바쁘다고 핑계를 대던 외국기업들도 완벽한 기업 분석 보고서와 협조공문을 지속적으로 띄우자 태도가 바뀌었다"며 "20군데가 넘는 기업을 접촉해 모건스탠리 ING그룹 HSBC 소시에테제네랄 등 4곳에서 학생들의 발표 기회를 얻어냈다"고 전했다.
비록 짧은 '홍콩 투어'였지만 이들의 성과는 대단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10명 중 7명이 취업 인터뷰 제안을 받고 진행 중이다.
그 중 한 명은 합격이 결정돼 서면 계약을 남겨두고 있다.
모건스탠리와 소시에테제네랄에서 한국 시장 분석 발표를 했던 이민지씨(21·경영학과 3학년)도 "채용절차가 마무리 되지 않아 확신하긴 어렵지만 조만간 좋은 소식이 올 것 같다"고 자신감을 표명했다.
그는 "글로벌시대에는 외국 기업과 직접 접촉해 원하는 일자리를 얻어야 한다"며 "목표하는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이들은 홍콩 현지에서 하루 평균 4시간을 자면서 강행군을 했다.
ING그룹 발표 팀이었던 이여명씨는 "홍콩에 온지도 모를 정도로 열심히 했다"고 회상했다.
오전 오후 스케줄을 마친 뒤에는 현지에 진출한 서울대 선배들과의 인맥 쌓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선배들로부터 자신의 삶을 얘기처럼 쉽게 전달하는 '스토리텔링' 기법을 기업 업무에도 적용하는 테크닉을 배웠다"며 "재무파트에 지원하려면 '재무를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이야기를 만들어 내야 좋은 인상을 주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들의 프레젠테이션 내용은 프랑스의 유명 비즈니스스쿨인 '인시아드(INSEAD)' 졸업생보다 우수했다는 후문이다.
글·사진=성선화 기자 doo@hankyung.com